조선에서 온 바다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玆山魚譜).
그로부터 200년 후.
우리 바다의 물고기들은 여전히 안녕할까.
바다는 넓고 물고기는 많다.
아는 만큼 맛있는 바다생물 이야기.
2017년 가을바다에서 다시 써보는 물고기 사전, 신(新) 자산어보(玆山魚譜)
1부. 한밤의 은빛 물고기 유혹
자산어보에 ‘맛이 달고 물리면 독이 있다’고 기록되어있는 갈치. 갈치가 제철인 이맘때면 여수는 갈치를 잡으려는 낚시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두 시간을 바닷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갈치의 명당이라 소문난 백도 일대. 드디어 집어등이 환하게 밤바다를 밝히고 본격적인 낚시질을 시작하려는 순간. 거친 파도와 바람이 복병처럼 나타나고 마는데... 뒤집힐 듯 흔들리는 파도에 속도 울컥 뒤집히는 낚시꾼들의 아우성이 시작되고 낚싯줄 엉켜 여기저기 야단법석. 과연 은빛 갈치의 화려한 유혹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까.
함평만 드넓은 자연을 닮아 언제나 천하태평 사람 좋은 웃음으로 싱글벙글한 조성대 씨가 노랑가오리 잡으러 바다로 나선다. 그런데 이미 막차를 타버린 걸까. 노랑가오리는 감감무소식. 그래도 마냥 좋은 조성대는 노랑가오리잡이 자체 졸업식 치르고 밤바다로 향한다. 노랑가오리 자취를 감췄다는 건 곧 전어잡이가 시작된다는 뜻. 자산어보에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고 소개된 전어. ‘따닥발이’라 불리는 함평 전어는 크고 신선할 더러 더욱 기름져 맛있기로 소문났다는데... 밤바다 전어잡이는 풍어를 이룰 수 있을까.
2부. 섬마을 소문난 어부의 비책
낚싯대 하나면 천하무적. 제아무리 영리한 녀석이라도 벗어날 수 없다. 50여 년간 써온 바다 일기를 엮어 자신만의 자산어보를 완성한 한관배 씨. 조도는 물론 멀리 신안 앞바다까지 물고기 지도 훤히 꿰뚫고 있을뿐더러 낚싯대 드리우면 백발백중인 한관배씨는 농어잡이 고수 중의 고수다. 더듬이처럼 바닷물에 낚싯대 척 드리우면 앉아서도 천리안. 농어 녀석들 있는지 없는지 금세 답 나오고 거센 파도 물살에 낚싯대 또 한 번 슬쩍 그으면 팔뚝만 한 농어가 쌍으로 올라온다.
속도광에 못 말리는 질주본능으로 움직이는 물고기만 보면 무조건 쫓고 보는 삼치. 그 성질을 못 이긴 삼치들이 마구리 배에 운명을 달리한다. 대나무에 낚싯줄 엮어 쉴 새 없이 달리며 삼치를 유혹해 미끼를 덥석 물게 하는 마구리 배. 김향빈 씨의 마구리 배가 오늘도 삼치와 쫓고 쫓기는 바다 경주를 시작한다. 4.5kg에 달하는 대형 삼치와 고깃배의 쉴 새 없는 장거리 경주. 과연 어느 편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
3부. 대어 사냥꾼들의 한판승
부시리 한 마리 잡으면 그날은 마을 잔치하는 날. 자산어보에도 이르길 ‘큰 것은 10척(2m~3m) 정도, 성질이 용맹스러우며 사납다’고 알려진 부시리. 대어 중의 대어로 낚싯대 부러뜨리기 선수인 부시리를 못 잊어 아예 진도로 귀향한 사나이 삼인방이 바다로 나간다. 서승진 씨의 지휘 아래 도착한 곳은 암초가 많아 부시리 사냥의 명소로 알려진 복사초. 과연 낚싯대 드리우자마자 손맛이 아닌 ‘몸맛’ 제대로 느끼게 하는 부시리들 연이어 등장하고 필사로 저항하는 부시리와 낚시꾼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기 이어진다.
강태공은 주나라 무왕을 낚기 위해 80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하물며 ‘바다의 왕자’를 낚는데 고작 몇 시간쯤이야. 바로 감성돔 얘기다. 찬바람 부는 가을부터 본격적인 감성돔잡이 시작되는 전남 장흥 득량만. 연일 발길 이어지는 낚시꾼들 덕에 김삼봉, 장삼희씨 부부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한다. 갯바위마다 사람들 싣고 내리랴, 끼니때 맞춰 도시락 배달하랴 눈코 뜰 새 없는 부부.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감성돔 맞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섭섭하다는 부부는 동네 형님네들과 함께 낚싯대 드리워보는데... 10월이면 제철을 맞는 감성돔 낚시의 묘미와 장흥의 별미 된장물회를 맛보며 즐기는 뱃놀이 이야기.
4부. 서해바다 남자의 자격
바다에서 웬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한여름 지나 초가을까지 뽁뽁 울어대는 소리의 정체는 바로 보구치. 마량포구를 막 떠나 보구치잡이에 나서는 이건호 씨 배 한 척에는 그들 부부와 딸네 식구들까지 온가족 밥줄이 달려있다. 도시 생활 접고 귀어해 뱃사람 다 된 두 명의 사위들과 한 배를 탄 장인어른 이건호씨. 백년손님 사위들과 장인어른의 그물질 호흡은 과연 제대로 맞을까. 바다 사나이들 혼을 쏙 빼놓는 뽁뽁 보구치 잡이 이야기 만나러 서해바다로 떠나본다.
바다 위로 튀어 오르며 날 보러 오라 손짓하는 숭어. 30년 차의 베테랑 어부 이강열 씨 부부도 숭어의 부름에 가만있을 수 없다. 펄에 좋아하는 먹이들 많아 절로 모여드는 숭어 덕에 강화도 앞바다는 말 그대로 숭어 밭.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하다’는 숭어를 잡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순발력이다. 숭어보다 재빠르게 그물을 치고 거두기 위해 부부의 찰떡 호흡이 빛을 발하고 그물 가득 올라오는 숭어들. 아들 손주 며느리까지 줄줄이 가족들 행복 몰고 오는 숭어 몰러 바다로 나간다.
5부. 개도에 사는 쫄깃한 맛
추석이 다가오면 개도 어부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추석 때 쓰일 돌문어 잡이가 한창이기 때문. 대대로 돌문어를 잡고 있는 김본임씨 부부도 아들까지 함께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간다. 밧줄에 주렁주렁 매단 붉은 단지들을 바다에 넣었다가 단지 안에 숨어든 문어를 잡아 올리는 전통방식 고수하는 가족. 수백 개 이르는 단지들 끌어 올리면 스멀스멀 문어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하고, 즉석에서 잡은 돌문어 한 마리 넣고 뜨끈뜨끈 라면 한 사발 끓여 먹으면 힘든 바다 일에도 세상 누구 부럽지 않다.
할아버지에 이어 3대째 멸치잡이 가업 이어가고 있는 형제들과 개도의 청년 어부 삼인방의 일탈이 시작됐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며칠째 멸치 소식이 좋지 않은 어장 때문에 그물에서 손 놓은 청년들. 뜻밖에 찾아온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낚싯대 하나씩 어깨에 메고 강태공 흉내 좀 내 볼 참인데... 고기잡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개도 대표 어부들의 낚시질 솜씨는 과연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