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높으니 말이 살찌고 식욕도 돌아오는 계절, 가을!
추수할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행복하다.
제철을 맞은 음식들은 그 자체로 몸에 좋고 맛도 좋아 챙겨먹는 것이 좋은데.
전어와 함께 가을 별미 3총사로 꼽히는 대하와 꽃게.
가을 한 철에만 나서 더욱 귀한 송이와 진짜 맛있어서 사위만 준다는 아욱까지.
이 가을, 식욕을 왕성하게 만드는 밥도둑을 찾아서.
1부. ‘가을 인삼’을 찾아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장산도 낙지박사
"사람한테 인삼 녹용보다 훨씬 좋은 거야 이게”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40년 동안 낙지만 바라보며 장산도 갯벌을 누볐다는 강대용(68)씨는 ‘낙지박사’로 통한다. 사철 먹지만 특히 가을 낙지는 인삼만큼 귀한 보양식이라는데.
그런데, 그의 낙지 잡는 방식이 특이하다. 구멍 곳곳에 십자가를 긋고 비석을 세우는데!?
낙지박사의 수상한 행동! 그 비밀이 밝혀진다.
낙지가 육고기보다 흔해 돼지고기 대신 낙지를 즐겨먹었다는 장산도 사람들.
돼지고기 대신 낙지를 넣어 만든 산적과 낙지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낸
호롱구이는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끓는 물에 갖가지 채소를 넣고 낙지를 살짝 데쳐 분홍빛이 돌 때쯤 얼른 건져내는
연포탕은 찬바람이 솔솔 불 때 먹으면 맛이 그만.
낙지 산적, 낙지 연포탕에 전라도의 별식 낙지 호롱구이까지.
나눔의 미를 아는 강대용 씨의 마음이 인삼보다, 녹용보다 더 귀한 밥상을 만들어낸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오나니, 정선 더덕 밥상
바람에 살랑거리는 억새풀이 마음 설레게 하는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자락에도
가을이 왔다. 오늘은 나국주(58), 이대명(51) 부부가 5년 동안 키운 더덕을 캐는 날!
더덕은 일교차가 크고 해발이 높을수록 향이 좋다는데,
해발 800M에서 자란 정선 더덕은 단연 최고, 이곳 사람들에겐 더덕이 인삼 대용이다.
더덕 요리만 30년이라는 더덕요리 베테랑 부녀회장님은
더덕 하나로도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밥상을 뚝딱 차려내는데!
냉장고가 없던 시절,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던 짭조름한 밥도둑 더덕장아찌부터
아삭아삭한 식감에 씹는 맛이 소고기 맛이라는 더덕숯불구이, 그리고 담백한 더덕튀김까지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더덕 밥상을 들여다본다.
2부. 가을 산, 보물밥상
'신이 내린 선물’ 송이 찾아 삼만리
영덕의 깊은 산골, 이상범(48)씨와 결혼한 그의 세 여동생은
가을 한철, 산중 생활을 함께 한다.
1년 농사나 다름없는 가을 보물이 이때만 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산삼만큼 귀하다는 송이버섯!
송이는 예부터 채소들 가운데 ‘채중선품(菜中仙品: 채소들 가운데 신선의 품격을 가졌다)’
이라고 불릴 만큼 가을철 귀한 보물로 여겨져 왔는데.
가을 한 철 40여일 정도, 20년 이상 된 소나무 밑에서만 나고 맛은 물론
약효도 좋아 ‘가을 산의 보물’이라 불린다.
떡갈나무 잎에 송이를 통째로 넣어 구우면 육즙이 그대로 고이며
송이의 쫄깃한 식감에 불향까지 더해진 송이구이가 완성된다.
거기다 송이와 가장 궁합이 잘 맞다는 송이 백숙과,
생으로 고추장에 무친 송이 고추장지는 그야말로 신선의 맛.
한 철 고생도 잊게 한다는 그 맛에 함께 취해보자.
묵 쒀서 남 줬다, 한 평생 도토리와 함께
"도토리묵 하다 늙었어. 손 안 놓고 했으니까”
충청남도 서천, 장항선을 따라 30여 년 전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서천 판교마을.
예쁜 구두를 꺼내 신고 길을 나선 할머니들이 있다.
소풍이라도 온 걸까, “젊어서 노세~♪”하며 머리엔 꽃까지 꽂고 노래까지 부르는데!
흥 돋우며 가을을 즐기는 이곳은, 마을 뒷동산.
예부터 도토리가 많이 나 가을이면 도토리묵을 쒀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 덕분에 ‘도토리묵 하면 서천 판교마을’이라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도토리묵은 기본, 도토리를 갈아 얻은 앙금으로 부친 전은 이곳만의 별미.
거기다 도토리묵을 말린 것으로 끓인 된장찌개까지!
이렇게 먹다보면 밥을 몇 공기라도 먹게 돼 이 마을 사람들은
힘이 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단다.
추억을 더듬어 묵을 쑤는 할머니들의 건강밥상을 만나본다.
3부. 햇볕이 키우고 흙이 거들고
자연‘愛’산다, 자연을 닮은 부부의 가을 아욱 밥상
“자연에서 나는 것만 먹으면 다 보약이야, 보약”
경상북도 안동시, 새소리 지저귀는 고즈넉한 시골에 자리 잡은 한옥.
이곳엔 정영자(62), 김광호(68) 부부가 산다.
8년 전, 김광호 씨가 60세가 되자마자 도시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터전을 잡은 부부.
귀농 8년차라 아직 배울 게 많은 농부지만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단 하나!
농사란 욕심내지 않고 하늘의 뜻에 맞춰
자연이 주는 만큼 만족해야 탈이 안 난다는 것이다.
오늘은 부부가 고구마를 거두는 날.
수확량은 뒷전, 이 사람 주고, 저 사람 줄 생각에 부부는 그저 설렌다.
집 앞마당 3천 평 땅에 여러 종류의 채소를 심었는데,
제철 채소는 웬만한 고기만큼 영양이 풍부하다고.
일을 마치고 제철을 맞은 아욱으로 밥상을 차리는 아내.
가을 아욱은 ‘사립문 걸어놓고 먹는다.’, ‘사위만 준다’ ‘가을 아욱으로 끓인 된장국을 3년만 먹으면 외짝문 으로는 못 들어간다’ 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 별미.
찬바람이 솔솔 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욕심 없이 사는 부부의 산골 자연 밥상을 만나본다.
'인삼보다 낫다’는 가을무, 맛보러 가세~
"무를 안 먹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속이 안 좋더래요.
그랬는데 무를 먹고 다 좋아 졌대”
경상북도 안동, 가을맞이가 한창인 어느 농촌마을에는
손맛 좋기로 소문난 김시영(85), 김시향(75), 김시홍(79) 할머니가 산다.
맏언니 김시영 할머니는, 머리도 하얗게 세고 체구도 아담하지만
동생들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일도 잘하는 근면 왕.
새빨갛게 익은 오미자를 똑같이 따는데도 양이 월등히 많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뽑아온 무로 밥상을 차리는 할머니들.
85세 김시영 할머니가 여태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무’에 있다는데!
경상도 지방의 주식이었던 무밥은 무가 실해지는 가을에 먹는 것이 최고.
뜨끈한 솥 밥에 양념장 한 숟갈 떠 쓱쓱 비비면 다른 반찬 필요 없는 밥도둑이다.
거기다 찬바람 잊게 하는 뭇국, 안동 사람들은 다 안다는 안동의 별미 ‘무 식혜’까지
새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푸짐한 밥상이 가을을 알린다.
4부. 가을 왔‘새우’
강화도에 가을 왔‘새우’~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강화도는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송강의 민물과
바다의 짠 물이 만나는 지점. 환경에 예민한 새우는
적당한 염도를 가진 강화 앞바다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다.
때문에 이맘때쯤 강화도 앞바다엔 새우잡이 어선들로 가득 차는데
40년 경력의 김영철 선장 역시 두 달째 좁은 배에서 생활 중이다.
이맘때 잡히는 새우로는 젓갈을 만들어 주로 김장 때 쓰는데
새우젓은 강화도 사람들에게 최고의 밥도둑.
새우젓을 이용한 요리도 발달했는데 갈비를 새우젓만 넣고 끓인 ‘젓국갈비’는
소화도 잘 될뿐더러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고려 고종이 수도를 강화로 옮긴 후 지역의 특산물을 왕에게 대접한 데서 유래했다고.
젓국갈비와 젓새우 튀김, 고추장에 바로 찍어먹는 생새우까지
강화도 외포리 사람들의 군침 도는 밥상을 만나본다.
평범한 새우는 가라! ‘바다의 귀족’ 대하
충청남도 보령시의 작은 섬, 죽도.
아주 작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이곳에서만 산 채로 대하를 잡기 때문이다.
40여 년 간 이곳에서 산 대하를 잡아 왔다는 장의진(71) 선장은
살아 있는 대하를 잡기 위해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그물을 끌어 올린다.
선장과 선원은 그물을 올리고, 내리고를 수차례 반복하는데!
기계가 할 일을 사람이 하려니 쉽지는 않지만, 이곳의 대하를 볼 수 있는 건
9월에서 11월까지 단 두 달. 힘듦보다 기대감이 앞선다.
그는 과연, 기다림 끝에 보물을 낚을 수 있을까?
한 편, 바닷고기 만나기 어려운 죽도 옆 농촌마을 달산리 사람들은
선장님이 갖다 주는 대하로 바다에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자연산 대하를 소금구이 해 껍질을 벗겨 초장에 푹 찍어 한 입 넣으면,
부드럽고 쫄깃한 대하의 육질이 입에서 감도는 최고의 맛!
게다가 힘 좋은 싱싱한 꽃게로 만든 얼큰한 꽃게탕, 실한 살 아낌없는 꽃게 무침까지
농촌 마을 바닷길 열리던 날, 달산리 사람들의 행복한 가을 밥상을 찾아가본다.
5부. 하늘이 높아 강은 살찌네
가을 밥도둑 ‘붕어’ 밥상
충청남도 논산시,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탑정호는
가을철이 되면 물 반, 고기 반이 된다. 경치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30여 년 붕어를 잡아 3남매 시집 장가 다 보냈다는 허선기(73), 박일성(70) 부부.
박일성 씨는 25년 간 붕어 요리 전문 식당을 했을 정도로 손맛이 좋다는데.
그물에서 붕어를 잔뜩 걷어 올린 후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하는 박일성 씨.
그런 아내가 반가운지, 식당을 할 땐 붕어 손질을 도와주지 않던 남편이
아내 옆을 따라다니며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을철 살이 도톰하게 오른 붕어로 시래기 넣고 푹 졸여 낸 붕어찜과
잔뼈가 많은 붕어를 세 번이나 튀겨 뼛속까지 바삭하게 만든 다음
고추장 양념에 갖은 채소 송송 썰어 올려 맛을 더한 붕어 튀김.
붕어찜 냄새가 탑정호를 넘은 것일까. 어찌 알고 딸과 사위까지 찾아와 상에 둘러앉았다.
가을이 되면 엄마가 해준 붕어찜에 밥 한 그릇쯤은 일도 아니었다는 딸.
그가 말하는 붕어찜 맛있게 먹는 방법은!?
얼큰하고 바삭한 맛에 사랑까지 더해진 붕어 밥상.
아,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가을 몸보신은 이렇게! 송담마을 ‘추어 매운탕’
황금빛 들판, 고개를 숙인 벼들, 그리고 논밭 안엔 엉금엉금 우렁이들.
경상북도 예천군 송담 마을의 가을 풍경이다.
13년 전 이장인 남기호(58) 씨 부부가 친환경 쌀농사를 시작하며
마을에선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게 됐는데. 그 후 가장 달라진 게
논에 미꾸라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마을에선 매년 추수를 마치고 나면, 미꾸라지를 잡아
마을 사람들끼리 잔치를 벌인다. 이맘때의 미꾸라지는 동면을 준비하기 때문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기 때문에 맛이 훨씬 좋다고.
살 통통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갈지 않고 통째로 넣어
얼큰한 추어 매운탕을 끓이면 몸보신에 딱!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따끈따끈한 밥에 추어 매운탕 한 그릇.
가을의 쓸쓸함을 잊게 하는 송담리 사람들의 시끌벅적 수확 밥상을 찾아가본다.